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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유우] sunset

 

새벽공기는 맑았고 바람의 신도 기분이 좋은지 적당한 산들바람이 불었다. 태양전차를 몰기 딱 좋은 날씨다. 유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나자마자 동쪽 끝 항구로 내달렸다. 태양의 위치, 그리고 시간, 확인. 전차의 상태는 어제 헬리오스와 함께 확인했었지. 

헬리오스는 근 몇년간 유우에게 태양전차 모는 법을 가르쳐준 태양전차의 주인이었다. 물론 실전은 오늘부터지만, 해가 진 후로부터는 전차에 대한 것은 모두 가르쳐주었다. 유우는 뜨거운 태양과는 다르게 온화한 그를 떠올렸다. 동쪽 끝 일출만을 기다리고 있는 태양 옆으로 그가 보였다. 눈부신 금빛의 머리칼을 가진 태양의 신. 그는 세상좋은 얼굴을 하고 유우에게 웃어보였다. 

 

금발은 태양신의 상징이었고 유우는 태양신의 핏줄임에도 불구하고 흑색의 머리칼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헬리오스의 전차를 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러나 헬리오스는 태양은 금색, 흑색, 그 무엇도 아닌 어떤 색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며 유우를 받아들였고, 유우의 첫 태양전차 시승식을 선언했다. 신들 사이에서 ‘검은 태양’이라고 불렸던 유우는, 오늘 헬리오스가 제공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태양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실수없이 이동시킬 계획이다.


 

할 수 있겠니? 

헬리오스가 물었다. 그는 너무도 눈부셔서 유우는 차마 그를 맨눈으로 보지 못하고 고삐를 잡고있는 빛나는 손을 보며 대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날만을 위해서 몇 년간 연구하고 공부해 온 걸 아는 헬리오스는 그 이상 답을 하지 않고 유우의 손에 고삐를 쥐어주었다. 유우는 그런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한손으로 고삐를 잡고, 한손으로는 금빛으로 빛나는 전차에 손을 댔다. 잘 부탁한다는 의식으로.

 

너무 급하게도, 느리게도 몰면 안된다. 전차의 말들을 당황시키지 말고, 익숙한 것처럼. 그렇게 고삐만 잘 잡고 있다보면 밤이 될거다.

 

황혼이 보여도 바로 돌아와야한다. 전차의 주인이 말했다.

유우는 대답하지 않고 결의에 찬 얼굴로 헬리오스를 바라보았다. 

 

헬리오스가 전차에서 멀어졌고 그가 내는 빛이 조금 일렁였다. 유우는 그것을 출발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하늘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지상에 아침을 선사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는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태양열이 거세지고, 그림자는 짧아지고. 유우는 그림자가 다시 길어지기를 기다렸다. 

 

서쪽 끝에 다다르면 태양은 땅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하늘은 낮에는 보지 못했던 색으로 물들게 된다. 그리고 하늘 곳곳에 빛나는 영혼의 역사가 보이게 될 때, 그 때 황혼의 신 미카엘라가 하늘 위에서 강림하여 하늘에 여러 변화를 주관하게 된다. 


 

얼마나 남았을까. 유우는 뒤따라오는 태양을 보았다. 아직 눈부시도록 빛나는 태양은 땅과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구름의 신도 오늘은 휴가인가 보다. 다행히도 유우의 눈에는 구름이 아닌 땅이 바로 보였고, 유우는 기쁜 마음으로 땅을 내려다 보았다.

 

소나무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태양은 점점 주황색으로 물들었지만 그 빛만은 찬란하게 빛났다. 

 

저녁이 도래하고 있었다. 유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달의 신 셀레네가 저 멀리서 달을 끌어 올렸고 달의 옆면을 한순간에 없앴다. 깔끔한 반달모양. 유우는 달을 보며 반쪽짜리 신인 데미갓을 떠올렸다. 올림포스로 올라가기에는 평생 노력해도 부족한, 반쪽짜리 신. 

 

대부분의 데미갓은 더 풍요로운 신의 삶을 살기 위해 올림포스로 올라가길 원했다. 다만 유우와 미카는 신인 아폴론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하고 땅에서 어린시절을 지낸 탓인지 땅을 사랑했고 올림포스에는 미련이 없었다. 힘도 명예도 그 무엇도 필요 없이 서로만 있으면 그걸로 좋았다.

 

그래서 유우는 땅을 얼마든지 구경할 수 있는 헬리오스의 전차를 택했고 미카는 유우의 옆이라면 어디든 좋다고 말했었다. 유우는 미카의 선택을 존중했고 그가 태양신의 재능이 유우보다 뛰어나다면 미카가 전차를 몰아도 상관없었다. 검은 태양은, 태양이 빛을 내지 못할 때만 관여해도 되니까. 

 

그런데 어느 날 올림포스에서는 미카에게 유일한 저녁의 신이 되라는 통보를 헤르메스의 데미갓을 통해 전했고, 유우의 하루에서 미카를 앗아갔다. 


 

유우는 기억 저편에서 올라오는 나쁜 기억을 애써 꺼내보지 않으려 전차의 움직임에 신경을 기울였고, 달 옆에서 크게 손을 흔들고 있는 셀레네에게 인사했다. 

 

그 순간 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공간이 뒤틀리며 황혼의 신이 나타났다. 그는 얇은 장막으로 하늘의 색을 바꾸기 시작했다. 장막 덕분인지 달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장막이 유우의 전차를 향해 빠르게 돌진해왔다. 저녁이 오고있다는 것을 알게 된 태양은 온도를 낮추었다. 유우는 고삐를 더 세게 쥐었다. 

 

황혼의 신은 햇살같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태양이 그를 비추니 그의 금빛 머리칼이 밝게 빛났다.

금발의 머리칼이 태양의 상징이었다. 그는 ‘검은 태양’보다 더 태양이라는 이미지에 걸맞는 신이었다. 유우와 미카는 물론 미카를 아는 모든 신들은 그걸 알았기에 그가 황혼의 신이 되고 유우가 태양의 신이 된 것에 의구심을 품고는 했다. 유우도 물론 그랬고. 하지만 의문보단 미카가 유우와 같이 태양신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다. 아쉬움을 넘어 분노가 되기도 했었고.


 

- 검은 태양. 오랜만이야.

-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 오늘이 그 날인걸 알았다면 조금 일찍 내려오는건데. 아쉽네.


 

유우쨩- 이라고 말하며 황혼의 신은 황금전차에 올라탔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그의 냉기에 빛을 조금 잃었다.


 

- 무거워, 미카. 이러다 밤 되겠어. 전차가 빨라지잖아.

- 밤의 신은 내가 가야 와. 나는 얼마든지 여기에 있을 수 있어. 

- 밤의 신이 화낼텐데.


 

알고 있어. 작게 속삭이며 미카는 점점 차가워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는 미카의 시간. 유우의 시간은 곧 끝난다. 


 

- 파에톤의 역사를 다시 쓰진 않으셨군요.

 

미카가 장난기 어린 얼굴을 하며 말했다.


 

- 장난하냐. 내가 그렇게 어리석진 않아.

- 그것도 알아. 

- 알면 빨리 내려. 나 거의 다 왔...

- 뭐가 이렇게 급해? 


 

미카가 유우의 말을 끊고 전차에서 내려 날아올랐다. 그가 미처 치지 못한 장막을 다시 치니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이 빛났다. 유우는 일렁이는 그의 장막을 쳐다보았다. 태양의 기세가 한풀 꺾이니 하늘의 색이 더 선명해보였다. 유우는 전차가 가장 강한 한낮도 사랑했지만 이런 저녁의 하늘도 좋아했다. 전차를 모는 일의 가장 아쉬운 점은 저녁과 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 헬리오스도 가끔 서쪽 끝에서 멈춰서 내 하늘을 봐줘. 유우쨩도 그렇게 해도 돼.

- 헬리오스는 주인이야. 나는 오늘 첫 날이고. 

- 기념비적인 첫 날이지. 이렇게 가까이서 말하는 것도 그 날 이후로 처음이다.


 

미카가 황혼의 신이 된 그 날을 말하는 거다. 태양신이 되겠다는 그의 바람은 무시해버리고 저녁에만 인간계로 오게끔 만든 날. 상위 신들은 데미갓을 그렇게 언제든 쓰고 버리는 말처럼 대했다. 아니. 오히려 말은 챙겨주기라도 하지. 유우는 동쪽 하늘 저 위에 걸려있는 올림프스 산을 향해 마음속으로 커다란 욕을 날렸다. 너네가 나와 미카가 가질 수 있었던 미래를 부쉈으니 그 값은 치루길 바란다고. 내가 불화의 신 에레스였다면 황금사과 몇천개를 콧대높은 너네 앞에 굴렸을텐데. 

 

올림포스를 응시하는 유우는 분노에 차 있는 것도 같았지만 무척 슬퍼보였다. 미카는 그 올곧은 눈빛과 자세를 보고 무언가 말을 하려다 삼켰다. 전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고 서로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유우는 서쪽 땅을 향해 곤두박질 치는 전차의 속도를 조금 낮췄다. 오늘은 첫 날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였지.


 

- 오늘은 제대로 몰기만 하고 바로 오라고 했어. 

- 그래도...

- 다음에는 같이 미카가 장식한 하늘을 같이 보자. 알았지?

- ........


 

유우가 웃었고 미카는 작게 한숨을 쉬며 전차에 걸터앉았다. 전차는 빠르게 서쪽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황혼의 영향인지, 공기의 흐름이 조금 바뀐 것 같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흐름이라 전차가 조금 흔들렸다. 


 

- 정말 예쁘다, 미카. 

 

저녁하늘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미카는 고맙다고 말했다. 유우는 미카가 전시한 하늘을 볼 수 있었지만 미카는 유우가 이끄는 전차의 완전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유우도 그걸 알고 있었고 얼마나 갈망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감정을 입 밖으로 내뱉게 된다면 서로가 신들에게 어떤 마음을 품는지 그리고 어떤 죄를 짓게 될지 그 끝이 보이지가 않았다. 영원의 시간동안 보지 못하게 된다면... 그들은 짧은 만남의 시간조차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 내일 다시 올게.

내일 다시 와. 미카가 유우의 말을 되짚음과 동시에 태양은 거의 빛을 잃었다. 더 이상 태양의 빛이 미카에게 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미카에게만 빛이 비추는 것처럼, 미카에게서 노을의 빛이 선명했다. 

 

유우는 그 찰나의 빛을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전차를 이끌고 지상에서 사라졌다. 

미카는 점점 어두워지는 유우의 모습을 끝까지 눈에 담았다. 가장 어두운 장막을 마지막으로 치고 태양을 따라 서쪽 끝으로 향했다.




 

인간의 눈에는 태양은 태양이고 언제나 같은 동선으로 움직인다. 동쪽에서 서쪽, 뜨고 지는 태양. 

 

그러나 인간들이 간과하는 것은, 가끔씩 저녁이 길어진다는 점이며, 태양이 마지막으로 빛을 내며 땅 아래로 모습을 감추면, 그 때부터 저녁은 짧아지고 곧바로 어두컴컴한 밤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w. 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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