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이라기 신야] 기억 속 여름은
기억은 불현듯 찾아왔다.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차가운 물방울과 맨발바닥 아래로 미끌거리던 이끼가 가득 낀 바위의 감촉. 얼음장 같은 계곡물과 여름의 공기 사이의 경계를 가르고 들어가던 작디작은 발. 짙푸른 색의 나뭇잎이 바람에 스쳐내는 선선한 소리와 함께 제 짝을 찾는 매미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귓가를 머물던 언제인지 모를 기억.
히이라기 신야는 흐르는 계곡 물의 앞에서 그런 기억을 떠올렸다. 그건 언제였을까? 기억에 남아있는 바람 소리에 신야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도쿄 근교의 멀지 않은 산속의 계곡이었다. 흘러내리는 물은 맑았다. 청량감이 있는 숲속 내음을 느끼며 신야는 제 손을 차가운 계곡물에 집어넣었다. 차가웠다.
“또 여름이네.”
신야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겨워.”
하안의 위에서 구렌이 천천히 중심을 잡으며 내려오며 말했다. 신야가 손을 뻗어 내려오는 구렌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래도 여름의 계곡인데?”
신야의 말에 구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동시에 뒤에서 쿠레토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더우면 물에라도 들어가지 그래? 물에 젖은 생쥐 꼴도 볼 만하겠군.”
“뭐? 지금 물놀이라도 하자는 거야?”
“하핫, 그것도 좋겠네.”
“놀러 온 게 아니잖아.”
구렌의 말에 신야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숙였다. 그 이후에 일어날 일을 예감한 구렌이 급하게 신야의 손에서 제 손을 빼내며 옆으로 몸을 피했다. 신야는 그대로 손을 휘둘러 차가운 계곡물을 구렌 쪽으로 끼얹었다. 구렌 쪽이 빨랐다. 철석- 하고 쿠레토가 허공을 날아가는 물을 맞았다.
“.......”
“앗, 쿠레토 형. 미안. 구렌! 치사하게!”
“넌 예나 지금이나.”
뚝뚝, 쿠레토의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갑작스레 끼얹어진 물에,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를 표정으로 쿠레토는 한 손으로 제 얼굴을 닦았다.
“팔자도 좋군.”
“그거야~ 당연한 걸, 경치 좋은 곳이잖아.”
신야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쿠레토에게 건넸다. 쿠레토는 고개를 저었다. 구렌이 슥 손을 뻗어 아직 물이 떨어지고 있는 쿠레토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손을 떼자 물이 묻어 뻗쳐 엉망이 된 앞머리가 드러났다. 구렌에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물에 빠진 생쥐 꼴은 내가 아니잖아.”
구렌의 말을 무시하고 쿠레토는 그 옆을 스쳐 지나갔다. 버석하게 말라버린 바위 위를 쿠레토가 걸어가자, 물에 젖은 군화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 발자국을, 신야와 구렌은 따라갔다.
계곡을 계속 거슬러 올라갔다. 선선한 바람이 뺨을 스쳐 지나갔다. 나무 아래 진 그늘을 따라 걸었더니, 끈적거리던 땀도 어느새 말라 있었다. 다시금 흐르는 계곡물을 신야는 내려다보았다. 소금쟁이 몇 마리가 유속이 느린 곳에 유유히 떠 있었다. 기억은 다시금 머릿속에 뿌옇게 칠해졌다.
참방거리던 손바닥 옆으로 도망가던, 소금쟁이와, 그 아래에 헤엄치던 작은 물고기들. 물에 묻어 달라붙던 하얀 티셔츠가 물 안에서 부풀어 그것을 보며 웃던, 제 어린 시절이 천천히 내려다보는 계곡물 위에 점점 선명해졌다. 신야는 제 눈을 깜박였다.
“그랬구나.”
“뭐가?”
뒤를 따르던 구렌이 신야의 중얼거림에 물었다.
“아니,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그 기억은 먼 과거였다. 히이라기의 이름을 가지기도 훨씬 전의, 그저 부모님의 칭찬이 좋아 그저 모든 것을 열심히 하던 자신의 기억이었다.
“하긴, 나도 어릴 때는 계곡에 수영하러 다니곤 했지.”
“역시 시골 출신 답네.”
“시골 아니거든?”
“그게 시골이지.”
신야의 말에 긍정하는 쿠레토의 말에 구렌이 정색을 하며 쳇-하고 혀를 찼다. 이래서 도시녀석들이란.
“커다란 수박도 물속에 있었고.”
신야는 천천히 떠오르는 기억을 제 입으로 하나하나 내뱉었다.
“물고기를 잡으려다가 미끄러져서 물에 풍덩 빠졌었어.”
“네가?”
“어릴 때였으니까? 그래서 놀라서 어푸어푸하다가 보니 발이 바닥에 닿더라고.”
침착하게 물에서 일어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물에 빠졌던 머리카락 위에, 떠다니던 나뭇잎이 붙어 누군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었다.
“놀라서 물 밖으로 바로 걸어 나왔는데, 누가 꼭 안아주었어.”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신야는 기억나지 않았다. 누구였을까?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원래 가족을 생각했다.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얼굴이었는지, 어떤 이름이었는지, 이제 신야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건 아마 자신의 방어기제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게 제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면, 제게는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혈연이란, 제게는 그리 쉽게 버림당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그 마른 포옹은 아마 특별했던 모양이었다. 신야는 제 앞을 걸어가고 있는, 여전히 축축한 쿠레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쿠레토 형.”
“왜.”
“지금 형 안아줘도 돼?”
“......더워서 헛소리를 하는 건가?”
“그런가 보지.”
구렌의 말에 신야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럼 구렌?”
“물에 빠뜨려 줄까?”
“그럼 물귀신 작전으로 같이 빠질 거야.”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럼 난 쿠레토를 끌고 가겠어.”
“둘 다 더위에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군.”
쿠레토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둘의 농담이 기분은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신야는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쿠레토 형은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두 사람이 앞을 걸어갔다. 신야는 그 뒷모습을 잠시 서서 바라보았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매미가 울었다. 그 소리의 안에서, 여름의 온도가 마치 포옹 마냥 제 몸을 감쌌다. 맑은 계곡의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다시 말라버린 손끝을 차가운 계곡물에 담갔다. 기억은 다시 제 안에 쌓여갔다. 이 여름도, 신야의 기억에 새겨진다.
w. 타스카
